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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의 노예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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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욱은 지금 채찍과 당근을 같이 휘두르며 영아를 제압했다. 사이판 별장을 영아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아니까. 

그곳에는 추억이 많았다. 가족들의 눈을 속이고 밀회를 즐기기에 그만큼 적당한 곳이 없으니까. 

게다가 거기서 그녀는 첫 경험을 했다. 

스물한 살 생일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그는 여친과 헤어진 후 싱글이었고 또 다른 편리한 파트너가 필요했다. 

그녀는 파트너를 넘어선 그야말로 노예였다. 

그가 원하면 뭐든 해주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순진했던 그녀는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그가 섹스를 하기 위해 여행을 제안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기껏 그녀가 원한 건 은근한 스킨십이었으니까. 


그녀는 그만 보면 막 설레고 그의 여자를 질투했지만 선을 넘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건 패륜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의 노련한 유혹에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욕정이 뭔지 여성이 뭔지 무지했던 그녀에게 그가 주는 쾌락은 마약보다 더 치명적이었다. 

물론 막상 그를 받아들였을 때는 죽도록 겁이 났지만 그 이후부터 두려움도 잊을 만큼 달콤한 사탕을 받았다. 


사랑과 욕정이 만나면 얼마나 폭발적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반쪽짜리 사랑이라도 해도 그녀는 그를 열렬히 사랑했고, 사랑의 행위가 그 사랑을 완성시킨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하지만 잘못된 욕정으로 그녀는 고통스러웠고 점점 피폐해졌다. 

그 노릇을 또 하자고? 겨우 끊어냈는데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그래. 

그런데 달리 방도가 있을까? 끊어냈다고 생각했을 때도 한 번도 끊긴 적이 없는데. 늘 그의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몸은 또 어떻고. 밤마다 그를 애태우며 몸부림쳐 놓고는.


“오빠 휴가받으면 그때 사이판은 같이 가요. 하지만 오빠 집에서 같이 지내는 건 싫어요.”


그가 독립해서 살고 있기는 하지만 같은 서울 하늘 아래서 부모님에게 들킬까 봐 늘 조마조마했다. 

특히 부친을 생각하면 그녀는 죄책감에 심장이 아렸다. 


그녀 때문에, 자신이 태어나는 바람에 부친은 목숨보다 사랑했던 아내를 잃었다. 

그 후 얼마나 외롭고 황폐한 삶을 살았는지 그녀는 잘 알았다. 

그랬던 부친이 겨우 안정을 찾았는데 그녀 때문에 결혼 생활이 흔들릴 수도 있었다. 

이미 죄를 지었지만 지금도 짓고 있지만 그래도 모르는 게 약이라면 몰라야 했다. 

최악의 비밀일 수 있지만 꼭 지켜야 할 비밀이었다.

더구나 자신의 딸이 의붓아들의 사랑을 받아도 기가 찰 노릇인데 잠자리 상대일 뿐인데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상상하기도 싫었다.


“널 여기 두고 갈 수 없어.”


그의 짜증스러운 말투에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과할 정도로 신경질적이었다. 

언제나 냉정을 잃지 않고 속을 잘 보이지 않던 그가 지난 1년간 많이 달라진 것 같았다. 

뭔가 초조해 보인달까. 


좋은 징조일까? 


그녀는 마음이 약해졌다. 하지만 버틸 때까지 버티고 싶었다. 

이제는 그에게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편해서 충직해서 다시 시작하자고 했다면 달리 생각해야 할 것이다.


“날 강제적으로 데리고 갈 수는 없어요. 난 이제 더 이상 오빠 말이라면 사족을 못 쓸 만큼 절대적이지는 않아요.”


더 이상 오빠의 충직한 노예가 되지 않을 거예요.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될 수 있는 한 시간을 두록 정을 떼고 싶었다. 

그렇게 들키지 않고 끝을 내면 더 이상 좋을 게 없을 테니까.


그녀가 서른이 되면 그에게 벗어날 수 있을까? 

그도 나이가 들면 콩깍지가 벗겨질 수도 있으니까. 행여나! 


그건 희망 사항일 뿐이라는 생각에 그녀는 회의적이었다. 


어쨌든 3년을 그와 지내는 동안 시간에 비례해서 애정의 깊이가 되었다. 

그러니, 싫증이 날 거라는 바람은 애초에 글러 먹었다. 적어도 그녀는 그랬다. 


물론 그는 아닐 것이다. 

솔직히 그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고 하지 않았다면 다시 돌아왔을지도 의문이었다. 

그래도 태욱이 지난 1년간 다른 여자를 찾지 않았다는 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알아, 이제 절대적인 쪽은 네가 아니라 나지.”


그의 씁쓸한 어조가 그녀의 심금을 울렸다.


“오빠가 절대적이라는 의미를 알아요?”


영아는 그의 마음을 구석구석 파헤쳐서 오롯이 이해하고 싶었다. 

정확히 그가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렇다고 미래를 약속받을 수는 없다. 현실이 그랬다. 현실을 망각할 정도로 미치지는 않았으니까. 미친 건 맞지만 말이다.


“알아. 아닌 줄 알면서도 잘못된 길을 계속 가고 있는 내 자신을 막을 수 없으니까. 도저히. 그러니까, 널 질질 끌고라도 여기서 데리고 가고 싶은 거지. 내가 여기서 떠나면 다른 남자가 네 곁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을 것 같으니까.”


그녀는 입이 딱 벌어졌다. 


그가 이렇게 막 말을 쏟아내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는 지금 흥분했고, 비록 육욕 때문에 질투와 소유욕을 느낀다고 해도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건 분명해 보였다. 

그녀는 그 사실에 설렜고 기대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처럼 격정적인 그의 모습은 생소했지만 마음에 들었다. 

그녀만 그에게 안달했던 과거를 보상받는 기분이랄까. 물론 이 정도로 충분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정 그렇다면 올라갈게요.”


이렇게 약해지면 안 되는데 오래된 습관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그가 실낱같은 희망을 줘도 동요하게 된다.

내 곁에 두겠다는 결심이 선 순간부터.


“어때? 맛있어?”


태욱은 그녀의 평가에 사활이라도 걸린 것처럼 물었다.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그녀를 위해 손수 파스타를 만들었다. 

그는 요리에 관심이 없었지만 파스타만큼은 자신 있었다. 

영아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파스타라 유명 셰프인 고객한테 특별히 배웠다. 


그는 그녀를 처음 본 10년 전부터 보살피고 싶었고 몹시도 아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마음뿐, 언행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특히 그녀와 남녀로 엮이고 난 후부터 깊은 죄책감 때문에 더 심해졌다. 


그 자신에게 화가 나서 그녀에게 더 거칠게 대했다. 

조금만 삐끗하면 무너져 내릴까 몹시 두려웠다. 

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그녀를 다른 남자한테 보낼 수는 없었다. 

그건 지금까지 그가 그녀로 인해 겪었던 고통과는 비교도 안 되는 아픔일지 뻔히 아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하겠는가. 


그녀는 그를 위해 태어난 여자였다. 

다른 남자한테 그녀를 주는 걸 뻔히 지켜보는 건 그가 견뎌낼 수 있는 한계점을 넘은 격심한 고통이었다.


“맛있어요. 요리 솜씨가 전보다 더 좋아졌는걸요.”


그녀가 입술에 묻은 소스를 혀로 훔치자 그는 군침을 삼켰다. 

결국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다가가서 입을 맞췄다. 

그녀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에게 동그랗게 눈을 굴린 채 미소 지었다.


“그럼 많이 먹어.”


1년 동안 수없이 그녀의 이런 모습을 상상하며 파스타를 만들었다. 연습과 정성이 셰프한테서 배운 단계를 넘어선 그만의 요리법을 익힌 것이다.


“오빠도 먹어요.”


그녀가 포크로 파스타를 돌돌 말아서 그에게 내밀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영아에게 느껴 보는 다정함이었다. 


순간 뭔가 울컥하면서 코끝이 찡해 왔다. 

왜 그녀의 결별 선언에 동의했던 것일까. 

1년 동안 그는 이런 그녀가 그리워 상사병 걸린 환자처럼 밤잠을 설치고 일에 몰두하려고 애썼다. 


그동안 그녀는 다른 남자한테 위안을 찾았다. 

그녀가 그럴 줄 몰랐다. 

그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큰 실수였다. 


그는 오만했다. 

그녀가 설령 그와 끝났다고 해도 그렇게 빨리 다른 남자를 받아들일 줄 몰랐다. 

게다가 결혼 선언은 믿고 싶지도 않았지만 충격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실 모친으로부터 그 소식을 듣고 망치로 둔부를 세게 얻어맞은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녀한테 단둘이 만나자고 한 건 만약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직면하면, 그가 무슨 짓을 할지 예측이 되지 않아서였다. 

그는 그야말로 뺑 돌아서 맛이 갔다는 것을 인식했고, 어느 정도 진정할 여유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믿지 않으려고 다 허세라고 생각하려고 기를 썼다. 


하지만 그녀의 입을 통해 날짜까지 들으니 입맛이 썼다. 

하지만 질투하고 분노하기에는 그가 한 짓이 있기에 대놓고 나무랄 수도 없었다. 

게다가 두 사람한테 놓인 현실이 이미 지나간 일에 연연할 수 없게끔 다그쳤다.


과거보다 불확실한 미래가 더 신경 쓰였다. 


한마디로 그녀와 그는 미래가 없었다. 계획을 세울 수도, 약속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화가 났고, 그를 이렇게 오도 가도 못 하게 만든 그녀가 지긋지긋했다. 

아닌 줄 알면서도 끊어 낼 수 없는 질긴 감정의 실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녀를 원망할 계제도 아니었다. 

먼저 선을 넘은 건 그니까.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어서 그녀의 소녀다운 감상을 이용해 계획적으로 유혹했다.

순진한 그녀를 섹스의 맛에 길들인 것이다. 

그가 느끼는 지독한 갈망을 그녀가 알기를 바랐다. 


그녀를 너무나 원해서 죽을 것 같았던 시간을 보상받고 싶었다. 

그는 나쁜 놈이었고, 지금도 나쁜 놈이다. 안다. 너무나 잘 알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의 내면 깊은 곳에 악마는 죄책감으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었다.


“영아.”


“네?”


“너 나한테만 이래야 해.”


그는 말을 아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그녀도 알 것이다. 순간 그녀의 짓궂은 미소를 보니 충분히 알고도 남았다는 것을 알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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